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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쁘게 흘러 가지만, 바람과 햇살은 늘 제 속도로 흐른다. 그 리듬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시간"을 찿았다.

 

 

가끔은 아무일도 없는 날이 오히려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날도 딱 그랬다. 

별다를 것 없는 오후,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해서 그냥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약속도 없었다. 그냥 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었다.

도시의 소음이 뒤로 멀어 질수록 머릿속이 서서히 비워졌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오래된 공원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며 길위를 덮고 있었고, 그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하늘만 바라봤다. 

작은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유난히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 햇볕이 마치 오랜 친구의 손길처럼 어깨를 가만히 감쌌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제부턴가 하늘 올려다 보는 일조차 잊고 살았던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이라는게 이런거였나 싶었다.

 

그때였다, 어느새 옆자리의 한 노인이 비둘기에게 빵조각을 던져주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오늘은 바람이 참 좋지않아요?"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마음이 좀 가벼워 지네요."

노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바람이 너무 거세면 방향을 잃게 되지만, 적당히 불면,길을 알려줍니다."

그 한마디가 유난히 오래 여운을 남겼다. 대단한 말도 아닌데, 그 날 이후로 나는 시간을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됐다.

모든건 결국 지나간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제야 정말로 이해한 것 같았다.

바람은 불고, 낙엽은 떨어지고,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그 일상적인 순환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또다른 시작을 기대하며 산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해질녘의 햇살이 내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그 그림자를 따라 걷다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살아 있다는게 조금 고마웠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시간은 여전히 나를 재촉하지만, 그날 의 바람과 그 노인의 말이 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스치는 방향을 느끼며,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주 잠깐이라도

세상이 멈춘듯한 그 순간에 머물러 본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오늘의 바람은 참, 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