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길

어릴 때, 나는 엄마의 손이 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넘어져 무릎을 다치면, 엄마는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픈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도, 배가 아파 울음을 터뜨려도, 엄마의 손이 

내 이마를 짚어주면 금세 따뜻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의 손은 언제나 바빴다.
아침이면 부지런히 밥을 짓고, 가족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었다. 학교 갈 시간에는 내 가방을 챙겨주고, 다림질한 교복을 

내밀어 주었다. 엄마의 손은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추우면 내 손을 감싸 쥐었고, 가족들이 입을 옷을 정성껏 개었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을 보살피고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받은 손길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고, 언제든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엄마의 손이 예전처럼 부드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등에는 주름이 생기고, 거칠어진 손바닥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손이 이렇게 변한 것은 나와 가족들을 위해 쉼 없이 일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언젠가 엄마가 말했다.
"이제는 네 손이 더 따뜻하네. 예전엔 네 손이 내 손보다 작았는데, 이제는 다 커버렸어."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손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나는 엄마보다 키도 크고 손도 커졌다. 

하지만 엄마의 손은 어릴 때와 달리 작아 보였다. 손등에는 자잘한 세월의 나이테가 그려져 있고, 아직 따듯하지만 거칠고 뻣뻣한 느낌이들었다.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묵묵히 세월을 견뎌오신 나의 어머니! 

예전에는 엄마가 나를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나를 감싸 안고 다독여 주었다면, 이제는 내가 엄마를 감싸 안을 차례였다.

엄마의 희생, 그리고 미처 몰랐던 삶의 이야기들,
엄마의 손에는 인생이 새겨져 있었다.
어릴 때 나는 그 손이 그저 따뜻하고 부드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손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보이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릴 적에는 내가 감기에 걸리면 엄마가 밤새 내 이마를 짚어주며 간호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엄마가 아픈 날은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엄마가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엄마는 우리 가족을 위해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엄마가 평소보다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엄마, 어디 아파?”

그제야 엄마는 힘없이 웃으며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늘 나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어릴 때 내가 아프면 엄마는 늘 이마를 짚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는 단순히 그 말이 마법 같아서,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정말 괜찮아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엄마는 아파도 가족을 위해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의 "괜찮아"라는 말은, 그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기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몰래 부엌에 가서 따뜻한 차를 끓였다. 그리고 엄마의 방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도 고마운 듯 차를 받아들었다.

“우리 딸이 다 컸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가 아플 때 더 잘 챙겨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감싸줄 차례
어릴 때는 엄마가 나를 돌봐주었지만,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돌봐드려야 할 때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네 손이 따뜻하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누구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

그래서 남아있는 날 동안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많이 안아 드리고, 손잡아 드리고,

눈 맞추며 얘기하고, 함께 추억을 쌓아가야겠다. 
내 어머니의 삶에도 따듯함이 쌓이도록....

이제 나는 그 마법의 손길을 이어가고 싶다.
엄마가 내게 베풀었던 그 따뜻함을, 변치않는 그 사랑을, 드리고...나누며...

우리는 종종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 늦게 깨닫곤 한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해보자.
그 말 한마디가, 그 작은 손길이,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